백두대간

백두대간 8구간2(화령재~비조령)

강가에버드나무 2015. 5. 26. 17:02

<백두대간 8구간(화령재~늘재) 종주 개요>

 

1. 기간 : 2015. 5. 23(토)~ 5. 25(월)

 

2. 인원 : 나홀로(밤티재~늘재 구간만 서성진 부장님과 동반 산행)

 

3. 구간 지리 및 거리

  23일 : 서울 -> 화령재(화령장) 이동

  24일 : 화령장~화령재~봉황산~비재~못재~갈령삼거리~형제봉~피앗재(피앗재산장),

           산행거리 18km(접속구간 포함) 

  25일 : 피앗재 산장~피앗재~천왕봉~입석대~신선대휴게소~문장대휴게소터~시어동갈림길~밤티재

           ~늘재, 산행거리 17km(접속구간 포함)

 

4. 접근 및 복귀 방법

  접근 : 동서울종합터미널 -> 상주종합버스터미널 -> 화령

  복귀 : 개인 차량 이용(서성진 부장)

  

5. 숙박

  23일 : 화령장(화령), 24일 : 피앗재 산장

 

 

<도시탈출>

답답한 이 도시를 떠나고 싶다

 

<도시탈출 계획>

5/23
오후1시까지 당직 근무 후 상주를 거쳐 백두대간 8구간 들머리가 있는 화령(상주시 화서면) 도착 후 숙소 잡고 휴식
5/24
화령에서 피앗재까지 산행 후 피앗재산장 도착(접속구간 포함 약 18km)
나의 백두대간 지지산행을 위해 달려온 태극귀인과 합류
5/25
피앗재에서 속리산 천왕봉, 비로봉, 문장대를 거쳐 늘재까지 산행(접속구간 포함 약 17km)
이날 나는 피앗재에서 북진, 태극귀인은 늘재에서 남진하여 중도에 조우할 예정

혹시 제가 여러시간 소식이 두절될 경우 상기 어딘가에 쓰러져 있을수 있으니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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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렇게 23일 오전에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고 떠났다.

 

오전 당직 근무를 마치고 동서울 터미널에서 상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참 사전에 예약 안했으면 오후 2시에 못탔을 듯...

 

 

 

산행때마다 항상 후회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책 한권...

이번 산행에는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기로 한 '미움받을 용기'와 함게 한다.

과연 읽을 수 있을까...

 

고속도로에 차가 많이 막혔다. 그러나 상주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 갈 틈도 없이 

화령가는 버스에 올랐다. 시간이 딱 맞아서 원래 예상했던 시간에 화령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난번 산행시 화령에서 묵을 때는 숙소와 인근 분식집만 왔다갔다 했는데 이번에는 동네를 한바퀴

둘러볼 여유가 있었다.

 

 

저녁으로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기사 식당으로 들어갔다. 

7천원짜리 김치찌개를 주문했는데 이렇게 푸짐하게 나온다.

 

 

반찬도 정갈하다.

 

 

이곳은 숙소 바로 앞에 있는 화령공용버스정류장...

 

 

이곳도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웰마트... 이곳에서 내일 산행시 먹을 간식거리들을 구입하였다.

 

 

이곳이 지난 번 산행과 오늘 묵을 숙소 화령장이다.

1층에 목욕탕을 겸하고 있는데 이용해 보지는 못했다.

 

 

화령장의 내부...

 

 

창문 건너편에 보이는 건물에 노래방인지 단란주점인지가 있어 밤새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푹 잠들지는 못했지만 최대한 편안하게 쉴수는 있었다.

 

 

오늘 걸어야할 길이 멀기에 새벽 5시 기상하여 배낭 챙기고 5시 반쯤 출발하기전 숙소 앞에서

한 컷 찍어 보았다.

 

 

숙소에서 들머리가 있는 화령재까지는 2km 정도 거리인데 택시를 타지 않고 그냥 걷기로 한다.

 

 

이른 새벽 잠든 마을 길을 걸으며 이곳 저곳 둘러본다. 아름다운 마을이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대로에도 차가 한대도 없다.

 

 

저 쪽에 화령장지구 전적비가 보인다.

1950년 7월 17일~7월 25일까지 벌어진 화령장 전투는 국군 독립 제17연대가 북한군 제15사단의

선두부대인 제48연대를 기습하여 큰 전과를 거두고 이들을 격퇴하여 국군 제2군단의 퇴로를 차단하려 했던 당초의 계획에 차질을 빚게하고 국군이 낙동강 전선으로 철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얻게

되는 전공을 세웠다. 

 

 

화령장지구 전적비 우측 국도변으로 상주 신봉리 석조보살입상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26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었다.

 

 

길을 가다보니 SBS 리얼귀농프로젝트 농비어천가 촬영지를 만날 수 있었다.

나의 미래 꿈인 귀농 관련 프로그램이 바로 이곳에서 촬영되고 있다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을 주변의 논이 아름다워 배경 삼아 한 컷 찍어본다.

참 이번 산행을 위해 핸펀을 최신기종인 LG G4로 구입했는데 얼굴이 거의 뽀샤시 하게 나온다...ㅋㅋ

근데 3G 무제한 쓰다가 월 6기가로 바꿨는데 데이터가 400메가 밖에 안남았다.

데이터 꺼두고 필요할 때만 켜서 써야 할 듯...ㅠ

 

 

아침 6시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화령재에 도착하여 인증샷 찍고 장비 점검 후 출발... 

 

 

들머리 진입로에 안내리본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잠시 후 벌어질 알바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안내리본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진입로와는 달리 숲속에는 안내리본 별로 없어 길을 잘못

들고야 말았다.

이로 인해 길도 없는 작은 야산에서 한시간여를 헤매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다시 지도를 본 결과

아뿔사 국도변으로 걸어가다 보면 연결되는거였다.

 

 

바로 이곳이 본격적인 들머리인데 화령재 비석이 있던 곳의 들머리는 왜 그렇게 헷갈리게 되어

있던지...

한시간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헤맨탓에 힘도 빠지고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시간에 쫒기기 시작했다.

바로 이런 변수에 대응하기 위해 일찍 출발했음에도 지도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길을 재촉한다.

 

 

어쨌든 옳은 길을 찾으니 마음이 가벼워 진다.

아까 숲길을 헤맬때만 해도 혹여나 오늘 산행을 접어야 하는건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30분쯤 산길을 오르다 보이는 마을이 아름답다.

 

 

봉황산 가기전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580봉...

혹여나 사람이 있을까 조심조심 다가가니 아무도 없었다.

 

 

저 멀리 아름다운 마을을 배경으로 한 컷...

 

 

저곳이 오늘 내가 가야할 산들인지... 확실히 알수가 없다...^^;

 

 

화령 들머리에서 6시 출발...
but 길을 잘못들어 한시간 동안 알바 끝에 원점 회귀하여 다시 지도 보고 제대로 길을 찾아 이제야

오늘의 첫번째 목적지 봉황산 정상에 도착...
그나마 2시간 10분 거리를 1시간 반만에 왔으니 늦춰진 시간을 다소 보충하긴 했다
김밥 좀 먹고 쉬다가 다시 출발해야지...

 

 

해발 740.8m 봉황산 정상... 햇살이 장난 아니지만 숲길이 햇살을 막아줘 버틸만 하다.

 

 

저멀리 보이는 마을이 아련하다.

 

 

봉황산에서 비재 방향으로 하산길에 만난 밧줄 구간...

 

 

이번 구간은 산길에 작은 돌들이 깔려 있어 미끄러짐에 유의해야 했다.

못 발을 내딛으면 가랑이가 찢어질 듯 쭈욱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봉황산에서 한시간쯤 걸었으니 휴식...

 

 

고사목 한그루와 뒤에 보이는 웅장한 산세의 조화가 오묘하다.

 

 

산길을 에워싼 빽빽한 수목이 정말 감사했다.

뜨거운 햇살을 막아준 수목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무척 힘든 산행이 되었을 것이다.

 

 

비조령으로 내려가는 계단길...

 

 

이곳이 바로 비조령 위를 연결하는 생태통로인 듯...

 

 

저멀리 상주시 비조령이라고 쓰인 백두대간비가 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오늘 목적지의 반이상 걸었다. 지도에는 비재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비조령으로 되어 있다.

 

 

비조령은 동쪽의 동관과 서쪽의 장자동 사이에 있는 령 백두대간 위에 있다.

새가 나는 형국이어서 불리는 이름이라고 한다.

'비슴하다, 비탈, 벼랑' 등의 뜻으로 쓰이는 말을 지명에서 한자로 표기할 때는 '천(遷), 애(崖), 별(別), 성(星), 비(飛)'로 나타난다. 상주지역에서는 '비루, 비알'이라고 한다.

'비탈'과 '비루'를 땅이름에서 한자로 옮길때 '비(比, 飛, 琵)'를 썼는데 특히 '비(飛)'가 많이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