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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회 수화통역사 보수교육 4조 분과토의 내용

강가에버드나무 2010. 9. 7. 01:54

지난 수화통역사 보수교육시 있었던 4조의 분과토의 내용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보수교육의 주제였던 의료수화 통역시 경험했던 내용을 나누며 갈등이나 문제 발생시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은지 등에
대해 함께 논의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김철환 선생님이 좌장격으로 논의를 이끌어 주셨고 저는 알아서 서기를 자청했습니다.

우리 조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18명이 모여 토의를 진행하였습니다.


<4조 분과 토의 참가자 명단>

김00 - 서울지역 장애인단체, 장애인차별금지법 관련 업무
최00 - 강원도 영월 센터에서 근무, 집은 태백, 1주일 전에 맹장 수술
이00 - 강원도 평창 농아인협회 근무
이** - 강원도협회, 춘천시
윤00 - 전라북도 김제, 교회에서 활동
윤** - 울산 지역
유00 - 대구대학교에서 통역
이@@ - 대구에서 왔음
이## - 협회에서 잠시 일했음
이$$ - 강남 수화통역센터
이%% - 익산 수화통역센터, 지부 담당하다가 센터로, 익산 전문대 수화 강사로 활동
이++ - 인천시, 주부
이\\ - 부안에서 오셨음
이~~ - 부산에서 오셨음. 다른 분야 일을 하고 있음
이!! - 익산, 학생
이xx - 안양시 거주, 강남구청 수화통역사
윤00 -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수화통역
유00 - 청음회관 상담지원팀 근무

<분과 토의 내용>

김00 :
병원 통역은 거의 나가본 적은 없다
차별금지법 모니터링을 하면서 보니까 청각장애인들은 상담을 원하는데 의사들은 빨리 끝낸다.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건 : 1시간을 기다렸는데 병원 직원이 입을 가리고 호명해서
못 알아 들어
진정한 것, 병원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마무리함.
종합병원에는 보청기를 비치하도록 되어 있으나 없어서 진정이 많이 들어온다.
강원도는 어떤가?

최00 :
동해에 있을때는 했지만 영월에는 농아인이 없다.
통역 3년동안 못했다. 가끔 선거, 행사 통역 외에는 거의 못해봤다.
예전에 한 것은 잘 기억이 안난다.
문제점은 예약을 안하고 가면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한다.
농아인들이 잘 가는 병원과 연계하여 요일, 시간 지정한 후 이용한 적 있다.
인근 지역의 병원을 신뢰하지 않는 면도 있다. 외지에 나가서 수술하곤 한다.
강원도 16개 시군에 센터가 설립되어 있다.
다른 센터와 연계해 드린다.
그러나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김00 :
노인성 난청 등 구화인들은 많이 늘어나는데 수화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들은 줄어들고 있는
거 같다.

이00
지방에서 삼성의료원으로 왔는데, 간암 말기였고 어떤 조치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
의사가 가족들에게 환자의 상황을 설명하는 순간... 가족들은 암이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 청각장애인은 계속 무슨 얘기를 하는지 물어보는 상황.
억지로 말을 만들어서 전하기도 했다.

김00 :
런 경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수화통역사의 윤리적인 측면에서 그대로 전해야 하는데...
예를들면 욕을 통역해야하는 경우...

이00 :
환자 앞에서 의사가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잘못됐다.
환자가 청각장애인이라고 그런 얘길 하면 안된다.

윤00 :
예전에 장애인성폭력건으로 고소한 청각장애인 여자분을 통역한 적이 있다.
그 여자분이 강간을 당했다고 했지만...
그쪽 청각장애인들이 얘기 하는 내용을 보니 합작으로 상대 남자를 가해자로 몰고 가는
상황을 보게됨.
경찰에게는 청각장애인의 요청대로 그대로 전하면서도 맘 속으로 혼란을 느꼈다.
결론적으로는 패소를 했지만.. 통역을 하면서도 너무나 갈등을 겪었다.
사건 후 데미지가 너무 강했다. 못해먹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병원에서도 다 나았는데.. 일주일만 더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함.
청각장애인은 의사가 오면 그렇게 아프지 않으면서도 심하게 오바해서 얘기함.
속이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통역을 해야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었음.

윤00 :
3차 의료기관으로 옮겨왔으면 아마도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은 알았을 것이다.
농인 부부의 경우 본인이 죽어가면서도 배우자는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을 형제나 가족
에게 빼앗기고 무력하게 있어야 하는 것을 보면... 통역사로서 안타깝다.
배우자가 농인이면 의사는 배우자가 아닌 다른 가족에게 의견을 묻는다.
아내가 너무 힘들어 하니까 호스를 떼어내고 싶어했는데... 그러지 않다가...
갑자기 호스를 떼는 모습을 보고 무척 화가 나면서도 그러한 분노를 친족들에게 들어내지
못하고 통역사에게 하소연 할 때...
통역사가 24시간 붙어있지는 못하기 때문에... 가족이 결정해버리는 일이 많다.
3차 의료기관까지 갔다면 환자에게 준비할 수 있도록 통역을 해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00 :
죽기전까지 많이 도와주었던 가족이었지만 청각장애인은 가족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함.
비용 문제 등으로 가족은 포기하라고 했지만 청각장애인이 받아 들이지 못 하는 상황
이었음.
그래서 결국 가족이 결정해서 호흡기를 뗀 것이었음.

김00 :
집안의 경조사 등 행사에서도 청각장애인의 의사는 항상 배제된다.
자기결정권이 많이 무시된다.
농아인에게 결정권을 주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인 문제와도 연결된다.
또 24시간 함께 하지 못하는 상황...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활동보조인, 바우처 같은 제도 활용

이00 :
필요한 사람은 도움을 받겠지만... 악용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지금도 청각장애인들은 시도때도 없이 계속 부르고 함께 있어주길 원한다.

김00 :
그래서 심사제도가 있는 것이다.
불공정할 경우 페널티 주면 된다.
학원에서 청각장애인 학생 안받는다.
하지만 본인이 수화통역사 데리고 가면 받아준다.
우리나라 법 체계 자체가 농아인이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없는 구조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변화시켜야 한다.

이00 :
농통역사, 수화통역사와 근무중 임.
수화통역사가 출산 휴가 들어갔음.
센터일 하면서 통역사들 병문안 간 적 있는데 간호사들이 와서 뭐라고 하고 가면 부르고
의사 선생님이 회진하고 가면 또 부른다
당장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농인들은 뭐라고 한다.

김00 :
농인과 좀 짜고 라도 병원에 항의해서 문자 통역이든 수화통역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병원이 쉽게 변하지 않는 곳이다.
농아인들에게도 통역사만을 부르지 말고 간호사에게 좀 쓰라고 얘기해야한다.
농아인들에게도 교육을 시켜야 한다.
장애연금 등으로 어려움 겪지만 지체장애인처럼 투쟁해야 한다.

이00 :
저의 경우에는 농인이 오라고 하면 왜 부르느냐고 먼저 묻는다
간호사에게 전화해서 내용을 물어보고 영상통화나 문자로 알려준다
꼭 필요로 할때는 새벽이라도 간다.
굳이 안가더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00 :
농아인이 문자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자로 알려줘도 안 온것에 대해 서운해
하기도
한다
농통역사는 병원에 잘 안가려 한다.
근무시간이면 그나마 괜찮은데 근무시간 외에 본인이 필요할때는 아무 때나 부른다
병원에 입원한 4명을 쫒아다니느라 두 달을 매달려 있었는데 너무 지쳐버렸다
그분들은 5분만에 달려오길 바란다

김00 :
병원에도 별도의 준 통역사들이 배치되어 있어야 한다.
수화통역센터의 체계를 개선해서 바우처로 가야한다.
수화통역사의 권리가 높아져야 농아인들의 권리도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농아인들은 통역사의 권리가 높아지면 본인들의 권리가 낮아질 거라 생각한다.
농아인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이00 :
통역사를 보호해 줄수 있는 환경이 없다.

김00 :
수화통역사들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윤00 :
각 시도별로 놀고 있는 수화를 사랑하는 자격증을 갖고 있는 비상근 통역사들을 활용하면
도움
될 수 있지 않을까.

유00 :
병원에 상주하는 수화통역사 있기는 있다.
부산 성모병원에는 확실하게 있다.
기타 지역에도 한 두군데 있는거 같다.

이00 :
농아인의 인권의식이 높아지다 보니 사회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수화통역사에게 문제
제기를 한다.
선거 때 TV토론회시 수화통역을 안해줬다
농아인들을 찔러서 TRS 통해서 얘기를 하도록 했다
기계 부족 카메라 부족 등 변명을 하면서 다음 번에는 하겠다고 함.
농인들이 모니터링을 하다가 밤 늦게 문자옴. 통역 없었다고...

김00 :
모니터 하는 농인들에게 인권위나 고충처리위 등에 진정을 하라고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듯
하다

이00 :
공감가는 내용이었다

윤00 :
제가 일하는 곳이 관람하는 곳이라...(국립중앙박물관)
의료에 대한 것은 봉사활동 할 때 느꼈던 건데..
농인들이 의도하는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고...
잘 해주면 계속 부르는 것도 힘들다.
난중에 조금 잘못되면 뭐라 하니까 힘들다

이00 :
통역을 해본 적이 많지는 않다.
농인들이 알아서 다 하기 때문에 큰 문제를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얘기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느끼는 것이 많았다.

이00 :
금한게... 강남은 수급자들이 병원을 많이 다닌다.
다른 곳은 어떤가?
다른 분들의 대답-> 습관적인 것 같다. 가는 사람은 많이 간다.

유00 :
대구대 학생은 인권의식은 투철하다
신종플루 왔을 때 통역사를 불렀다.
이미 병원 다녀왔는데 약은 안먹고 통역사와 병원에 갔는데..
확정 판정을 받았다.
통역사는 애기도 있는 엄마였다.
그 통역사는 가족 모두를 접종하고 일주일간 집에 있었던 적도 있었다.
아무런 보호 받을 수 있는 장치가 없었다. 

김00 :
법이 다는 아니지만 있는 것은 활용해야...
지역의 수화통역사간 네트워크를 통해서 장애인복지의 흐름을 배우고 농인들의 실상을
잘 파악
해야 한다.
농아인 조직을 활용해서 교육을 시켜야 한다.
지금은 농인들이 인권의식이 향상된 면이 있다.
농인들이 집회를 통해서 센터 예산도 많이 늘어났다.
통역사들이 많이 알아야 하고 제도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지역적으로 차이가 있으므로 농아인협회가 중간에서 조정해야 한다.
의료통역과 관련해서는 농아인들이 불편을 못 느끼더라도 잘 살펴보면 차별 받은 부분들이
있다.
감시해야한다.
수화통역사의 권리가 향상되는 날이 올 것이다.